9월 5주차 - 외국 본사의 해고와 한국 노동법의 적용
외국 본사의 해고와 한국 노동법의 적용
정봉수 노무사 / 강남노무법인
I. 사건 경위 및 문제의 쟁점
2007년 9월, 재미동포인 한 근로자가 인천 송도경제특구 개발을 목적으로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한국에 설립한 자회사(이하 “A”라 한다)의
부사장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약 4년 동안 근무하였다. 그런데 2011년 1월 21일, 미국 본사(이하 “B”라 한다)는 “일거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즉시 해고를 통보하였다. B는
근무기간에 상응하는 금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하면서 퇴직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지만, 근로자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A에서 근무해
왔다고 보아 2011년 2월 15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A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였다(서울2011부해274 사건).
회사의 대응은 예상보다
복잡했다. A는 자신이 근로자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근로계약의
상대방과 급여 지급 주체는 미국의 B였고, 급여도 미국 계좌로
지급되었으며, 미국의 퇴직연금(401(k))과 의료보험 체계가
적용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최종적인 인사권과 해고권도 B에
있으므로, 한국 자회사 A만을 상대로 한 구제신청은 상대방을
잘못 지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해고사유가 정당한가”만을 다투는 사건이 아니었다. 누가 실제 사용자였는지, 한국과 미국 가운데 어느 나라의 법이 근로계약과
해고에 적용되는지, 그리고 한국의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분쟁을 다룰 수 있는지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 2026년 현재의 법체계로 보면 이 문제는 ① 실질적인 사용자의
특정, ② 근로계약의 준거법, ③ 국제재판관할과 국내 구제절차라는
세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는 것이 정확하다.
사건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
- 2011. 1. 21. 근로자에게 서면으로 즉시 해고 통보
- 2011. 2. 15. 근로자가 A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
- 2011. 4. 5. ~ 4. 8. 기존 사건을 취하하고 A와 B를 모두 피신청인으로
하여 재신청
- 2011. 6. 3. 심판회의 직전 당사자 간 금전합의가 성립되어 사건 취하
II. 당사자의 주장
1. 사용자의 주장
A와 B는 서로 다른 법인이고, 한국 자회사와 미국 본사는 각각 별도의
인사·회계·업무 체계를 가진 별개의 사업체이므로, A가 B 소속 근로자의 해고에 관하여 책임을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근로자는 B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B로부터 미국
계좌로 임금을 지급받았으며, 미국의 퇴직연금과 의료보험 제도가 적용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근로관계의 중심이 미국 본사에 있다는 근거라고 주장하였다.
근로자가 A의 부사장 직함을 가지고 한국에서 근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주된 역할은 B의 지시에 따라 A의 사업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본사에 보고하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본사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주재원에 가깝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채용·계약·보수·최종 인사권과 해고권을 B가 행사하였으므로, A는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이행할 권한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A만을 피신청인으로 한 구제신청은 각하되어야 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핵심 논리였다.
2. 근로자의 주장
근로자는 처음부터 한국에서 A의 사업을 위해
채용되어 약 4년간 한국에서 계속 근무하였고, 업무 장소와
일상적인 근로제공의 중심도 한국에 있었다. 따라서 형식적인 급여 지급처나 사회보험 체계만으로 한국 노동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B가 “일거리가 부족하다”는 경영상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하였다면, 한국법이 적용되는 범위에서는 단순한 계약해지가 아니라 해고로 보아야 하고, 해고의
정당한 이유와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상금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 해고의
정당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근로자가 퇴직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의 법적
성격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근로자는 A와의 실질적인 사용자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① A
대표로부터 성과평가를 받은 사실, ② A 대표로부터 계약갱신 거부 통보를 받은 사실, ③ A의 조직도·인력현황·업무절차서에
자신의 직책과 보고체계가 기재된 사실, ④ A 대표의 지휘·감독을
받은 사실, ⑤ 국세청 자료상 A가 원천징수의무자로 표시된
사실, ⑥ A가 급여명세서와 비용처리를 담당한 사실, ⑦ A가
지정한 한국의 근무장소에서 계속 일한 사실 등을 제시하였다.
현재의 국제사법 제48조에 따르면, 당사자가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강행규정에 따라 보장되는 근로자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 따라서 근로제공의 중심이 한국이라면 근로기준법상의 해고보호 등 강행적 보호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현재 국제사법 제43조는 근로자가 대한민국에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거나 최후로 일상적
노무를 제공한 경우 한국 법원에 사용자에 대한 근로계약 관련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분쟁
발생 전에 체결한 전속적 외국법원 관할합의도 근로자에게 보장된 한국의 재판관할을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방식으로는 효력이 제한된다.
III. 사건처리 내용 및 결론
1. A만을 상대로 한 사건에서 A와 B를 모두 상대로 한 사건으로
초기에는 A만을 상대로 구제신청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 답변서와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위험이 드러났다. 한국에서 근무를 관리한 주체가 A라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해고권과 복직권한이 B에 있다면 노동위원회가 A만을 상대로 실효성 있는 구제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결국 근로자는 최초 사건을 취하한 뒤 A와 B를 모두 피신청인으로 하여 사건을 다시 제기하였다.
B가 정식 피신청인으로 지정되자 사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한국의 절차와 거리를 두고 있던 B가 직접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근로자 측은 당시 시행되던 국제사법 제28조와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근로계약에도 한국의 강행적 노동법규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본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제시하였다. 결국 2011년 6월 3일 심판회의가
열리기 직전, B와 근로자는 1억 8,000만 원의 금전보상에 합의하였고 사건은 취하되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하여야
할 점이 있다. 이 사건은 합의로 종결되어 노동위원회의 본안 판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A와 B 가운데
누가 법적으로 사용자였다”거나 “해고가 부당했다”는 점이 이 사건 자체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 사례의 의미는
외국 본사와 국내 자회사가 함께 관여한 고용관계에서는 사용자 특정, 준거법, 관할 및 실효적인 구제 가능성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데 있다.
2. 2026년 현재의 준거법: 국제사법
제48조
2011년 당시에는 국제사법 제28조가 근로계약의 준거법과 국제재판관할을 함께 규정하였다. 그러나
국제사법이 2022년 전부개정되면서 체계가 바뀌었다. 현재는
근로계약의 준거법을 제48조가 규정하고, 국제재판관할은 제43조가 별도로 규정한다. 따라서 과거 판례나 문헌에서 “국제사법 제28조”를
인용한 경우, 2026년 현재 문서에서는 당시 법조문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현행 조문을 함께 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제48조의 핵심은 당사자자치와 근로자 보호의 조화이다. 근로계약서가 조지아주법
등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했다고 하여 그 선택 자체가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선택 때문에, 준거법 선택이 없었더라면 적용될 국가의 강행규정에 따라 근로자가 받을 보호까지 박탈할
수는 없다. 근로자가 장기간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였다면 한국의 강행적 근로자 보호규정이
최소한의 보호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외국적
요소가 있는 근로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를
판단할 때 단순히 급여 지급국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근로계약기간 중 국내·해외 근무기간, 실제 근무장소와 국내복귀 예정 여부, 근로계약 체결 장소, 근로시간·업무지휘
및 임금 지급의 주체, 노무의 실질적인 수령자, 법 적용에
관한 근로자의 기대와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3. 2026년 현재의 국제재판관할: 국제사법
제43조
현행 국제사법 제43조는 근로자가 대한민국에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거나 최후로 일상적 노무를 제공하였다면 사용자에 대한 근로계약
관련 소를 한국 법원에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사용자가 근로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일상거소 또는 일상적 노무제공지가 한국에 있는 때 한국 법원의 관할을 강하게 보호한다. 근로계약에서
외국법원을 관할법원으로 정하더라도 그 합의가 분쟁 발생 후 이루어진 것이거나, 한국 법원 외에 추가적인
외국법원 선택권을 근로자에게 주는 경우 등 법이 정한 범위에서만 효력이 인정된다.
다만 제43조는 문언상 “법원에 제기하는 소”의
국제재판관할을 정하는 조항이다. 노동위원회 구제절차의 관할을 제43조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노동위원회 절차에서는 한국 근로기준법의 적용 여부, 국내 사업장과의 실질적 관련성, 피신청인이 실제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구제명령의 이행 가능성 등을 함께 검토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2006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외국법과 외국법원 관할을 정한 근로계약이라도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근무한 근로자에
대해 한국 노동법과 국내 권리구제 절차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4. 해고의 정당성: “일거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가
한국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경우,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특히 “일거리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인원감축이나 직위폐지 등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면 근로기준법 제24조의 요건을 검토하여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대표에 대한 사전 통보와 성실한 협의가 핵심이다. 또한
원칙적으로 30일 전 해고예고 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
지급이 필요하고,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는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해고일부터 3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따라서 본 사건처럼 “업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즉시 해고하고 일정한 보상금을 제시한
경우, 그 보상금 제안만으로 경영상 해고의 실체적·절차적
요건이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로자가 충분한 정보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별도의 합의퇴직 또는
분쟁종결 합의를 체결하였다면 그 합의의 효력은 별도로 판단하게 된다.
5. 사용자 특정은 준거법 문제와 별개로 보아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실무적인
교훈은 “한국법이 적용되는가”와 “누가 사용자에게 해당하는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국 노동법의 강행적 보호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구제명령을 받을
상대방은 실제로 근로계약상 의무를 부담하고 채용·지휘·평가·보수·징계·해고·복직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사용자여야 한다. 국내 자회사가 일상적인
업무만 관리하고 외국 본사가 계약체결과 최종 해고·복직 권한을 모두 보유한 구조라면, 외국 본사를 절차상 상대방에서 제외할 경우 실효적 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외국계 기업의
해고사건을 맡을 때에는 근로계약서만 볼 것이 아니라 채용승인 문서, 급여 지급자료, 원천징수 자료, 조직도, 보고라인, 성과평가, 인사권한 규정, 본사와
자회사 사이의 파견·비용분담 계약, 해고통보 주체, 복직명령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주체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형식적
법인격과 실질적인 사용자 기능을 나누어 증거로 정리하는 것이 사건의 출발점이다.
6. 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실무상 교훈
1. 외국계 근로계약에서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해도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근무한 근로자의 한국법상 강행적 보호가 자동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2. 준거법과 국제재판관할은 별개의 문제이다. 2022년 전부개정 이후 국제사법은 이를 제48조와 제43조로 분리하여 규정하고 있다.
3. 국내 자회사와 해외 본사가 모두 인사관계에 관여한다면, 실질적인 사용자와 해고·복직 권한의 귀속을 먼저 확정하고 필요한 경우 절차상 상대방을 모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4. 경영상 이유를 내세운 즉시해고는 한국법이 적용되는 한 근로기준법상 정당성, 경영상 해고요건, 해고예고, 서면통지 요건을 각각 점검해야 한다.
5. 외국법원 전속관할 조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장기간 근무한 근로자가 국내 권리구제를 받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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