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일 만에 땅으로, 택시 간주근로제 적용제외 ‘첫발’
고영기씨 정부TF 출범에 고공농성 종료 … “시행령 개정까지 지켜볼 것”
지난 8일 오후 5시 택시노동자 고영기씨가 땅을 밟았다. 인천 길병원 사거리 앞 지상 20미터 높이의 통신탑에 오른 지 194일 만이다. 고씨는 택시업종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제외를 요구하며 0.25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여름 폭염과 장마를 견뎠다. 정부가 이날 ‘택시업종 근로시간 등 노동환경 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는 등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고씨는 고공농성을 끝냈다.
“내려왔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씨는 11일 <매일노동뉴스>에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해서 투쟁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며 “정부가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택시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택시업종뿐 아니라 외부에서 근무하더라도 근무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업종을 적용 제외하도록 낡은 제도를 고쳐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씨는 현재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땅을 딛는 순간 ‘땅멀미’에 한동안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지만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고 전했다. 지난 주말에는 ‘연대동지’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대동지들이 직접 병원을 찾아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도 나눴다. 고씨는 “20미터 아래에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연대동지들 얼굴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택시노동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확대해 준 확성기 역할을 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제야 첫발을 뗐지만 연대동지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의지를 다졌다.
고씨는 지난 3월29일 택시월급제 전국 시행을 미루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에 반대하며 통신탑에 올랐다. 이후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택시완전월급제와 간주근로시간제 적용제외를 핵심 요구로 내걸며 농성을 이어갔다. 간주근로시간제는 노동자가 사업장 밖에서 일해 실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일정 시간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택시노동자 등은 디지털 운행기록 장치와 GPS 등을 통해 노동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실제보다 짧은 소정근로시간을 정한다고 비판해 왔다. 택시업종 등 외부에서 근로시간 측정이 가능한 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에서 제외하도록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정부TF 출범, 시행령 개정으로 이어질까
▲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와 '택시노동자 고공농성 투쟁 승리를 위한 시민사회지원대책위원회'는 8일 오후 인천 길병원 사거리 농성장 앞에서 '택시노동자 고영기 동지 194일 고공농성 투쟁보고대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부와 택시노동계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택시업종 근로시간 등 노동환경 실태조사 TF’의 킥오프 회의를 열었다. TF는 우선 택시업종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기로 했다. 택시업종이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지, 간주근로시간제 적용이 적절한지를 조사한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TF에는 민주택시노조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택노련,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노사정이 마주 앉는다. 위원은 노조측 4명, 정부측 3명, 사측 2명으로 구성됐다. 차기 회의는 이달 안에 열릴 예정이다.
남은 과제는 TF가 실태조사에 그치지 않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느냐다. 택시지부는 정부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택시업종 간주근로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과 노동부 지침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세호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은 “노동부가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에서도 택시 운행기록 장치를 통해 노동시간 산정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며 “기술이 더 발전한 상황에서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민대책위를 해산하지 않고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엄재희 기자 입력 2026.10.12 06:30 eom@labortoday.co.kr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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